History of Reykjavik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의 수도이며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입니다. 비록 12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활기차고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레이캬비크는 맨 처음 아이슬란드 땅에 바이킹이 정착했을 때부터 아이슬란드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한번 레이캬비크에 대해 살펴볼까요 

아이슬란드의 역사에 대해서도 읽어보기

초기 역사


초기 아이슬란드 정착에 관해 기록된 책 란드나마(Landnama)에는 잉골푸르 아르나르손(Ingolfur Arnarson)이 기원후 870년에 노르웨이에서 출발해 아이슬란드에 처음 도착하였고 레이캬비크에 정착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Picture in Reykjavík, 19th century by Frederik W.W. Howell

도시의 이름은 맨 처음 그가 봤던 온천의 연기에 영감을 받아서 지어졌습니다. 레이캬비크는 '증기가 피어오르는 만' 정도로 해석됩니다. 

잉골푸르 아르나르손은 높은 기둥을 세우고 아이슬란드로 표류한 사람들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교역과 상업의 발전


18세기에 레이캬비크는 도시 지역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특히 1786년 덴마크의 독점이 파기됨과 함께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죠. 

특히 덴마크의 프레데릭 5세의 지원 덕택으로 국내 산업이 발전합니다. 아이슬란드의 스쿨리 마그누손이 레이캬비크에 인레틴가르 주식회사를 설립하며 이 흐름을 주도했습니다. 인레틴가르 주식화사는 어류, 황산 채굴, 농업, 조선업, 의류업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했습니다.

 

Picture in Reykjavík, 19th century by Frederik W.W. Howell

같은 해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 내에서 무역 교역소가 있던 여섯 곳 중한 곳이었고 이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은 레이캬비크 뿐입니다. 1786년은 확실히 레이캬비크가 도시로 발돋움한 때입니다.

 

상업이 발전하며 1880년에는 모든 나라에서 그곳에서 교역이 가능해졌으며 아이슬란드의 상업은 점점 규모가 커집니다.

독립을 향한 민족주의 운동

Oddur sterki Celebrating One Thousand Years of Alþingi in 1930, by Berit Wallenberg아이슬란드 국민들의 독립을 향한 열망은 19세기에 커졌습니다. 의회인 알씽기(Althingi)가 씽벨리르 국립공원에서 레이캬비크로 1845년에 위치를 옮기며 레이캬비크의 수도로서의 위치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1874년에는 처음으로 아이슬란드에 헌법이 제정되었고 중앙집권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1904년에는 수상이 레이캬비크에 있게 되었고 1918년에는 레이캬비크가 자치구로 지정되었습니다.

1920, 1930년대에는 아이슬란드의 어업이 성장하던 시기였으나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의 영향으로 타격을 받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아이슬란드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침공을 피하기 위해서 영국군은 아이슬란드에 기지를 설치했고 후에는 미국군이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덴마크가 점령되며 아이슬란드는 1994년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군대의 아이슬란드 주둔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이슬란드의 경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NATO 역시 아이슬란드에 설치되었고 1949년에는 이로 인해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전후 발달 상황

전쟁이 끝난 뒤 레이캬비크는 확장된 도시 지대와 함께 더욱 발전했습니다. 레이캬비크는 빠르게 현대화되었습니다. 1972년의 세계 체스 챔피언십, 1986년 미 소련 정상회의 등의 국제적 행사가 개최되었고 레이캬비크를 더욱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하게 만들었습니다.

 

U.S. President Ronald Reagan and Soviet leader Mikhail Gorbachev met in Reykjavik in October 1986 to discuss nuclear disarmament. Sadly the talks collapsed at the last minute

최근 레이캬비크와 아이슬란드는 경제적으로 굉장한 발달을 겪었으나 2008년에 경제 붕괴를 겪고 맙니다. 국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의회와 정부 건물이 있는 도심의 오이스투르뵐루르와 레이캬르가타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시위로 인해 정부가 퇴각했습니다. 그 후로 아이슬란드의 경제는 급격한 회복세에 있습니다.

 

레야캬비크의 문화 

레이캬비크는 다양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입니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 뷔욕시규어 로스, 작가 할도르 락스네스(도시의 중심 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르날두르 인드리다손(Arnaldur Indridason),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Yrsa Sigurdardottir), 코미디언이자 2010년에서 2014년까지 레이캬비크의 시장으로 재임한 욘 구르나르(Jon Gnarr) 등이 있습니다. 작가 시욘(Sjon), 안드리 스나이르마그나손(Andri Snaer Magnason) 등도 유명하죠. 

 

레이캬비크의 다른 다양한 행사로는 레이캬비크 아트 페스티벌(The Reykjavik Arts Festival), 아이슬란드 에어웨이브스(Iceland Airwaves), 게이프라이드(Gay Pride), 레이캬비크 국제 영화제(RIFF), 문화의 밤(Culture Night), 푸드앤펀(Food & Fun)등이 있습니다. 소나 페스티벌은 2013년 처음으로 레이캬비크에서 개최된 이후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또한 PEN 국제 회의가 같은 해 개최되었고 유네스코는 레이캬비크를 문학의 도시로 지정했습니다. 

레이캬비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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