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레이리, 아이슬란드 북부의 수도 | 문화, 역사 및 액티비티
아이슬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북부의 수도”인 아퀴레이리(Akureyri)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인구수는 얼마인지, 어떤 볼거리와 체험 활동이 있는지 궁금하신가요? 아퀴레이리의 문화와 아이슬란드 남부의 레이캬비크 (Reykjavik) 문화는 얼마나 다를까요? 아퀴레이리에 대해 궁금하신 모든 것을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진 촬영: Ludovic Char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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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레이리 소개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촬영자 Monster4711. 무편집본.
일반적으로 아이슬란드 관광객은 수도인 레이캬비크 위주로 관광 계획을 세웁니다. 국내 유일의 국제 공항인 케플라비크(Keflavík)에서 40분 정도 소요되는 편리한 위치인데다 아이슬란드 문화 및 사회의 핵심 지역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다양한 호텔과 바, 투어 프로그램 및 문화적 의미가 큰 건물 등이 아이슬란드 내 다른 도시보다 확연히 많은 것도 장점입니다.
위트 넘치는 101명의 현지인을 포함, 많은 사람이 레이캬비크를 제외하면 아이슬란드에는 현대적인 대도시가 없다고 농담까지 할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관광객들은 아이슬란드인들의 겸손한 농담을 받아들여 수도인 레이캬비크 위주로 관광 계획을 세우곤 합니다. 중소 규모 도시는 아이슬란드 특유의 매력과 문화를 체험하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에, 레이캬비크 위주로 여행 계획을 세우는 건 이런 곳들을 지나치게 되는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여행 기간이 짧다면 레이캬비크에 중점을 둔 계획이 나쁘지 않지만, 기간이 길 경우는 레이캬비크 인근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결과를 낳곤 합니다.
아이슬란드에서 1주 혹은 2주 정도 머물 예정이라면 꼭 렌터카를 대여해서 이동하시길 추천합니다. 전국의 다양한 관광 명소와 작지만 독특한 매력의 작은 어촌 마을들, 신비롭고 경이로운 풍경들을 아이슬란드 전국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기 있게 차를 몰고 길을 떠난 분만이 체험할 수 있는 멋진 곳들이 가득합니다. “아이슬란드 북부의 수도”라는 별명을 가진 아퀴레이리는 아이슬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전국 일주 시 꼭 들러봐야 할 곳입니다.
사실 “아이슬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는 아퀴레이리의 별명은 살짝 과장된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상주인구 수가 19,000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에 더 가까운 크기입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라면 도시라는 이름이 어울립니다. 크기보다 다른 면들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촬영자 Oscar Wergeland. 무편집본.
인구 수는 적은 편이지만 아퀴레이리는 빼어난 문화를 향유하는 도시입니다. 아퀴레이리의 다양한 박물관, 미술관, 식물원도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더불어 전국의 다른 아이슬란드인들처럼 아퀴레이리 현지 주민들 또한 문화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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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게 아퀴레이리가 아이슬란드에서 두 번째로 인기 높은 관광지가 되었을까요? 아퀴레이리의 시작은 어땠을지, 지난 세기 동안 도시 성장이 느렸던 이유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질문에 답해드리기 위해 가장 먼저 활기 넘치는 젊은 도시 아퀴레이리의 역사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아퀴레이리의 역사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촬영자 Oscar Wergeland. 무편집본.
아이슬란드 역사의 다른 면에 대해 알아볼 때와 마찬가지로, 아퀴레이리의 역사와 배경을 알아보려면 고대 사가(아이슬란드 어: 이스렌딩가쇠귀르(Íslendingasögur))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광범위한 내용을 담은 문학적 기록인 사가는 아이슬란드인의 특징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단일 사료입니다. 아이슬란드인의 기원과 현재의 문화를 발전시키도록 영향을 준 역사적 사건들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착 시대
란드나우마보크(Landnámabók) 사가에 따르면 아퀴레이리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은 아일랜드 출신의 바이킹 헬기 마그리 에이빈다르손(Helgi Magri Eyvindarson)이라고 합니다. 헬기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합니다. 아일랜드 인 어머니와 노르웨이 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부모와 떨어져 남서부의 위탁 양육 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너무나 말라서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헬기의 별명은 “말라깽이 헬기” 또는 “빼빼 마른 헬기”가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촬영자 Bjarki Sigursveinsson. 무편집본.
헬기 마그리 에이빈다르손은 부인인 쏘륀 하이르나(Thorunn Hyrna)와 함께 서기 890년경 아이슬란드로 이주해왔습니다. 아이슬란드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에이야피외르뒤르(Eyjafjörður)로, 왜 이 곳으로 이주해 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와 북유럽 신앙이 합해진 독특한 가정 환경 때문에 아이슬란드로 이주하게 된 것이라 추측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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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가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은 확실하지만, 바다를 항해할 때면 북유럽 신화 속 천둥의 신 토르를 의지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헬기의 이런 면이 아이슬란드까지 이주하게 만든 이유와 연관되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요.
알려진 사실은 헬기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오랜 후에도 딸 중 하나의 이름을 북유럽 신화 속 신의 이름을 따라 지었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아이슬란드의 상륙 지점을 정할 때도 고대 노르웨이 전통 방식을 따라 정했습니다. 바로 두 개의 나무 기둥을 배 위에서 던져 어느 쪽으로 상륙할지 정하는 방법이었는데, 현재 아퀴레이리의 위치에서 대략 7km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관습들은 아이슬란드의 기독교 전파가 흑백론적인 방식이 아니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오히려 실생활에서는 아주 다른 두 고대 종교가 독특하게 하나로 연합된 형태였습니다.
헬기가 첫 겨울을 난 곳은 현재의 아퀴레이리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하우뮌다르스타디르(Hámundarstaðir)였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북부 지역을 완전히 탐험하기 전에 임시로 머문 곳입니다. 얼마 후 헬기는 시그뤼네스(Siglunes)와 레이니스네스(Reynisnes) 사이에 몇 군데 불을 피워 악령을 쫓아내는 의식을 거행하고 자신의 땅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고대 아이슬란드인들은 해와 불, 열을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쫓아내는 무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트롤, 엘프와 은둔하며 사는 신비로운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처럼 고대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아이슬란드 사회에서 면면이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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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는 동안 불어난 크기를 고려해보면 헬기 소유의 땅은 당시 가장 큰 사유지 중 하나였습니다. 전통 사가에 따르면 헬기는 자신의 농장과 땅은 크리스트나(Kristna, 그리스도의 반도)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헬기는 아퀴레이리 도시의 설립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를 세운 잉골퓌르 아르나르손(Ingólfur Arnarson)처럼 말이지요.
“아퀴레이리”라는 이름이 대중적으로 사용된 시점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름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설이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내용은 그 뜻을 번역하면 “들판 모래톱”이 된다는 설입니다. 좁은 협곡 침식지 사이 숨은 옥수수밭이 존재했던 아퀴레이리의 예전 모습과 닮아 이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아퀴레이리의 발전
1778년이 되어서야 아퀴레이리 지역에 사람들이 영구적으로 정착한 마을이 생겼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 지역을 생활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언급되기는 했지만요. 1562년의 법원 문서는 아퀴레이리에 사는 한 여성이 불륜 혐의로 기소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이 여성은 젊은 남성과 한 침대에 누워있다 발각되었을 때 결혼 허가서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로서는 꽤 시끄러웠을 사건입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촬영자 Sigfús Eymundsson. 무편집본.
16세기 중반쯤 아퀴레이리의 유일한 건물들은 일시적으로 아이슬란드에 거주하며 거래했던 덴마크 상인들의 상점과 창고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이슬란드가 덴마크 왕실 소유의 공식 영토였으며 아이슬란드인들은 덴마크 왕의 국민이었습니다. 덴마크 상인들은 현지 주민과의 사이에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아이슬란드의 다른 지역으로 거래와 소통, 기술 등을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아퀴레이리는 1602년 공식 교역소로 설립되었습니다. 현지인과는 달리 덴마크 상인들은 아퀴레이리 지역에 일 년 내내 거주하지 않고 겨울마다 고국인 덴마크로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자연스럽게 마을 발전의 걸림돌이 되었고, 아퀴레이리가 발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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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년의 시간 동안 아퀴레이리는 덴마크 상인들의 베이스캠프로 사용되었습니다. 거대한 항구 역할을 한 아퀴레이리의 지형적인 이점도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교역지로서 발달해왔지만, 아퀴레이리에서의 지속 가능한 삶은 아직도 요원한 편이었습니다.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퀴레이리의 농업 가능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 상인들이 겨울 동안 귀국하지 않고 아퀴레이리에서 거주할 허가를 받은 1778년이나 되어서야 첫 주거용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사진 촬영: Frederick W. W. Howell
1778년까지 아이슬란드까지 통치하던 덴마크 국왕은 영토 내 국민들의 생활 환경 개선에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1786년 도시 헌장 수여 이후 아퀴레이리는 공식적으로 정착지이자 도시로 간주하였습니다.
이 시기 즈음 덴마크 상인들은 이 지역의 비옥한 토양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경작 기법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1800년이 되자 몇 년 전만해도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감자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 성공적으로 수확하였습니다.
덴마크 왕의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퀴레이리의 인구 증가는 수년간 12명에 그쳤습니다. 덴마크 왕실은 이를 실망스러운 결과로 받아들여 1836년 아퀴레이리의 도시 헌장을 폐지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촬영자 NVE. 무편집본.
1862년 도시 헌장을 다시 받기 전까지 아퀴레이리는 벽지의 ‘비공식’ 소도시 정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아퀴레이리의 역사는 도시의 진정한 미래 잠재력보다 통치 세력의 결정에 따라 그 발전 향방이 결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1862년부터 아퀴레이리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합니다. 주변 지역의 농업 발전 덕분에 농업 인구와 그 가정들이 유입되었고 어업과 수산물 가공 및 교역 외에 농업이 도시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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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농부와 상인들이 만든 에이야피외르뒤르 협동 조합(Eyjafjörður Co-operative Society)은 덴마크 상인과의 격렬한 협상을 벌이며 도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생활 및 노동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고, 대다수에게 아퀴레이리는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당시 농업과 어업이 크게 발전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1900년까지 아퀴레이리 인구수는 1,370명을 기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은 아퀴레이리 역사의 초창기에 국한됩니다. 당시 기준으로도 최신 편의 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착해서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촬영자 Andrea Zanenga. 무편집본.
1888년 여행 작가인 에델 브릴리아나 트위디(Ethel Brilliana Tweedie)가 아퀴레이리를 여행하며 기록한 글에는 이런 면이 잘 드러납니다. 에델은 형제인 본 할리(Vaughan Harley), 미래의 남편, 그리고 두 명의 영국인 친구와 함께 당시 영국과 아이슬란드를 정기적으로 왕복하며 승객 및 화물을 운송하던 페리선 SS 카모엔스를 타고 아이슬란드를 방문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이나 프랑스 파리가 인기 여행지였던 19세기 말엽 아이슬란드 여행은 도전적이고 이국적인 일로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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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에델은 아이슬란드에서의 경험담을 일기 형식의 기록으로 남깁니다. 당시의 경험담은 ‘아이슬란드 승마기’라는 책으로 출판하였으며, 여성용 곁 안장 없이 여성도 말을 탈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에델의 아버지가 적은 책의 부록 또한 눈여겨볼 만합니다. 아이슬란드의 경이로운 간헐천을 시적으로 표현한 첫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촬영: Frederick W. W. Howell
아래 내용은 아퀴레이리 항구에 도착한 에델이 적은 기록 중 일부입니다.
"상륙하자마자 만난 것은 우리를 둘러싼 슬프고 낙담한 표정의 주민들이었다. 생기나 흥미가 전혀 없는 얼굴은 둔감함과 냉담함 자체였다. 이러한 무관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들의 척박한 삶 때문이었으리라. 혹독한 추위도 견디기 어렵지만, 일상 생활 영위에 필요한 다양한 것들마저 부족하다. 아이슬란드인들은 짧은 햇볕도 감사히 받아들이지만 우리는 햇빛이 부족하면 얼마나 침울해지는지 잘 알고 있다. 주민들의 누렇게 뜬 낯빛과 행동 또한 슬픈 현실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언급은 다소 혹독하게 들리지만, 당시 아퀴레이리와 아이슬란드 대부분의 생활 여건을 고려해본다면 정확한 평가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얼룩진 20세기가 되어서야 아퀴레이리가 회복과 발전의 기회를 얻게 되었던 사실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아이슬란드의 역사 및 아이슬란드의 국기 | 정체성 이야기 등 기존 글에서도 언급했듯 아이슬란드의 근대성은 영국, 캐나다, 미국 등 외국 군대가 아이슬란드 연안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나치 침공 하의 덴마크에서 아이슬란드를 분리하려는 ‘선제적’ 개입은 아이슬란드의 현대적 기반 시설 발전을 위한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고, 아이슬란드인들의 마음에도 문화적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제 아이슬란드는 교류 없이 고립된 나라에서 벗어나 자국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는 주권 국가로써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나서게 됩니다. 더불어 아이슬란드의 기반시설 또한 처음으로 경제적 필요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진 촬영: 위키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촬영자 Hensser H (F/O). 무편집본.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아퀴레이리는 노르웨이-영국 공군 소속 330중대의 운영 기지로 사용되었고, 이 지역에서 카타리나 비행정과 노스롭 N3P-B 기종의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아이슬란드는 유럽과 미국 간 연합국의 물자 수송을 보호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두 진영 사이에서 아이슬란드의 전략적 중요성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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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아퀴레이리는 중요도가 큰 산업 시설을 갖추게 되었고 국내에서 정착지로써의 중요성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퀴레이리의 현지인들은 에이야피외르뒤르 협동조합의 기치 아래 함께 협동하며 농업과 어업 분야에서 상당한 고용을 창출해 냈으며 해당 분야는 수년 동안 계속 성장해 나갔습니다.
현재의 아퀴레이리
그렇다면 현재의 아퀴레이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난 한 세기 동안 아퀴레이리가 어떻게 아이슬란드 북부의 수도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을까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비해 아퀴레이리만이 가진 독특한 장점은 무엇일까요? 아퀴레이리의 풍부하고 매력적인 역사 속에서 얻은 고유의 문화적 특성은 무엇일까요?
현재 아퀴레이리의 인구는 대략 19,000명에 달하며 아이슬란드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인기 관광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이슬란드 여행 사이트 중 아무 곳이나 방문해봐도 아퀴레이리의 관광 인기를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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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레이리의 관광지로써의 성장은 물론 아이슬란드의 관광 산업의 발전 덕분이기도 했지만 증가하는 관광 수요 덕분에 도시 당국은 기반 시설을 현대화하고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아퀴레이리의 가장 인기 있는 투어 종류로는 고래 관측, 하이킹 및 고요하고 아름다운 미바튼(Mývatn) 호수 관광 등이 있습니다.
주변 피요르드 연안 바다가 다양한 해양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덕분에 아퀴레이리 연안의 고래 관측은 특별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20종 이상의 고래류가 아이슬란드 연안 앞바다를 서식지로 삼고 있으며, 밍크고래와 혹등고래가 자주 눈에 띄는 고래 종입니다.
경이롭고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더해 매력적인 현지 문화와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 덕분에 아퀴레이리는 아이슬란드에서 꼭 방문해보고 싶은 관광지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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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 Zheyun Wu
편의시설, 볼거리, 즐길거리
관광객이 아퀴레이리로 몰리는 이유 중 하나는 레이캬비크 외에도 아이슬란드에서 드물게 잘 발전된 대도시라는 점이라 생각됩니다.
아퀴레이리에서라면 관광객들은 현대 도심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편의 시설과 혜택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련된 커피 문화, 활기 넘치는 밤거리, 아름다운 거리 예술과 세계적인 레스토랑, 고급 호텔과 최신 창작 작품을 선보이는 다양한 브랜드, 예술가와 행위 예술가들이 모인 현지 축제까지,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겨울이면 환상적인 스키 리조트가 개장하며 아이슬란드 최고의 수영장 중 하나를 연중 내내 방문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최신 문화를 만날 수 있는 멋진 곳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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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건축물들 또한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아퀴레이라르키르캬(Akureyrarkirkja)는 아퀴레이리의 상징과도 같은 루터교 교회 건물로 장엄한 분위기의 높은 기둥과 거대한 시계, 아름답게 건물 앞을 장식한 계단 등 인상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아퀴레이라르키르캬 교회는 당시 아이슬란드 정부 건축가였던 귀드욘 사무엘손(Guðjón Samúelsson)이 디자인한 작품으로, 1940년에 완공했습니다.
사진 촬영: Tobias Keller
귀드욘은 레이캬비크의 할그림스키르캬(Hallgrímskirkja) 교회, 아이슬란드 대학교와 아이슬란드 국립 극장 등 전국의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입니다. 1940년 아이슬란드에 상륙한 영국 지휘관은 귀드욘 건축가의 천재적인 디자인에 감동한 나머지 “너무 아름다우니” 아이슬란드 대학교 건물을 장악하지 말도록 명령한 바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아퀴레이리에는 주목할 만한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습니다. 호프 문화 센터(Hof Cultural Centre)에서 라이브 음악 연주를 감상하며 음식도 먹고 현지의 생생한 정보들을 접해보세요. 1906년에 완공된 현지 극장 또한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며 고급문화 공연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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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북부를 관광 중이라면 아퀴레이리 식물원 또한 놓쳐서는 안 될 필수 관광지입니다. 1910년 아퀴레이리 여성들이 설립한 파크 소사이어티(Park Society) 위원회의 주도로 신도시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의도로 설립되었습니다.
식물원은 1912년에 개장하였으며 당시 위원회 소유의 토지 1헥타르에서 시작하였습니다. 1953년까지 3헥타르로 정원 규모를 증가시켰으며 1957년까지 식물원은 식물학적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촬영자 Simone. 무편집본.
오늘날 식물원은 현지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자 북극권 한계선 주변의 관목, 꽃과 나무를 연구하는 과학 시설로 활용 중입니다. 아퀴레이리 식물원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식물원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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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인 1957년, 식물 애호가 욘 로근발드손(Jón Rögnvaldsson)의 식물 수집을 구매해 아퀴레이리 식물원의 식물군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식물원에는 전임 공원 회장이었던 마가레트 시오스(Margarethe Schiöth) 등 식물원 발전에 공헌해온 분들과 함께 욘 로근발드손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퀴레이리 식물원에는 약 430종의 아이슬란드 토착 식물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생장이 가능하게 된 7,000여 개의 외래종 식물 표본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외래종 식물들이 아이슬란드에서 살게 된 것을 생각할 때마다 영화배우 제프 골드블럼의 유명한 대사인 “생명은 제 길을 찾기 마련이다”가 연상되곤 합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아퀴레이리 식물원은 이 지역을 방문한다면 들러봐야 할, 가 볼 가치가 충분한 아름다운 곳입니다. 관광 성수기의 교통 체증이나 인파에 지쳤다면 한번 들러 여유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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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퀴레이리에는 그 외에도 가볼 만한 곳들이 많습니다. 북부의 수도라는 별명에 걸맞게 다양한 박물관과 갤러리들이 있어 아이슬란드와 아퀴레이리의 문화, 역사에 대한 한층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한 곳입니다.
사진 촬영: Lachlan Gowen
1993년에 설립된 아퀴레이리 미술관 (Akureyri Art Museum)은 이 지역 미술관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퀴레이리 박물관(Akureyri Museum)은 도시의 정착과 성장, 발전을 주로 다루는 곳입니다. 항공 박물관(Aviation Museum)과 아이슬란드 모터사이클 박물관(Motorcycle Museum of Iceland) 또한 추천하고 싶은 박물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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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레이리 도시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구시가지였던 올드 타운(Old Town) 방문도 추천해 드립니다. 1778년에 건축된 락스달스후스(Laxdalshús)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그 외에도 지역의 건축 양식을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으니 가볍게 산책을 즐기는 건 어떨까요.
건축 스타일의 극명한 대조 또한 아퀴레이리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현대적 디자인과 전통 북유럽 양식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독특한 건물들을 만나볼 수 있어, 도심 속 산책 또한 아주 즐거운 경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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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레이리의 시립 도서관(Municipal Library)은 아이슬란드 최대의 도서관 중 하나로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 동심을 일깨워줄 프리드뱌르나르후스(Friðbjarnarhús)의 장난감 박물관(Toy Museum) 또한 즐겁게 시간 보내기 좋은 곳입니다. 다양한 장난감 자동차와 인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사가 어떤 것이든, 아퀴레이리에서라면 즐길 거리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아퀴레이리의 장점 중 또 다른 하나는 다른 도시 대비 편의 시설이 월등히 많다는 점입니다. 국내선 공항인 아퀴레이라르플뤼그뵈들뤼르(Akureyrarflugvöllur), 북부 최고의 대학교인 아퀴레이리 대학교("Háskólinn á Akureyry")가 인근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설들은 아퀴레이리가 잠시 머물다 이동하던 상인들의 거점에서부터 얼마나 큰 발전을 이뤄왔는지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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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레이리 여행
아퀴레이리를 여행하고 싶으시다면 다음 이동 방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보세요. 가장 먼저 렌터카 여행 패키지를 이용해 아퀴레이리까지 이동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레이캬비크에서 약 4시간 반 정도 원하는 속도로 이동하면 아퀴레이리에 닿을 수 있으며, 가는 도중에 들르고 싶은 관광지 또한 여러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스키 코스와 리조트로 유명한 크리다르퍄올(Hlíðarfjall) 산, 신비로운 풍경의 미바튼 호수 등 아퀴레이리 인근의 아름다운 관광 명소 또한 방문하기 용이합니다.
또 다른 방법은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겁니다. 레이캬비크 국내선 공항(Reykjavík Domestic Airport)과 케플라비크 국제 공항에서 에어 아이슬란드(Air Iceland)가 아퀴레이리로 취항하는 국내선 항공편을 운항 중입니다. 현재 아퀴레이리 공항은 활주로가 하나뿐이지만, 향후 관련 서비스 확장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케플라비크 국제 공항에서는 주 6회 항공편이 운항 중입니다. (국제선 이용객의 환승 위주로 운영됩니다.) 레이캬비크 국내선 공항에서는 하루 수 회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두 공항 모두 연중 내내 운영되며, 비행시간은 약 45분가량 소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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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기: 아이슬란드 항공편 안내
아이슬란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스트라이토(Strætó) 및 스테르나(Sterna) 사의 버스가 레이캬비크-아퀴레이리 간 운영 중이며, 두 버스 회사 간 이동 경로와 계절별 시간대가 상이합니다. 스트라이토는 연중 내내 57번 국도를 이용, 아퀴레이리 및 인근 지역까지 버스를 운영합니다. 반면 스테르나의 경우 여름철에 한정해 주로 60번 국도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북부의 수도” 아퀴레이리에 대한 글을 재미있게 읽어 보셨나요? 아퀴레이리 여행 경험이 있다면 어땠는지, 어떻게 아퀴레이리까지 이동했는지 궁금합니다. 추천하고 싶은 관광지나 액티비티가 있으신가요? 아래 페이스북 댓글칸에 여러분의 의견과 질문을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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