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역사

아이슬란드의 역사

Ingólfur Shahin
작성자: Ingólfur Shahin
인증된 전문가

BBC 바이킹 사가 시리즈를 보며 이 글과 함께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와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세요.

화산 폭발

생성된 지 2천만년이 된 섬을 ‘어린’ 섬이라고 하기엔 뭔가 잘 가늠이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 비교하면 아이슬란드는 정말로 그렇습니다.

이 섬 전체는 문명이 생겨 나기 전 원시시대부터 수많은 해저 화산들의 분출로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아무도 언제 아이슬란드 땅에 사람이 도래 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지구상의 섬 중에서 아이슬란드에는 사람이 늦게 진출했을 정도라는 것만 알 뿐이죠.

아이슬란드의 정착민

란드나우마복(Landnámabók) 또는 “정착민들의 책” 이라 불리는 이 책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첫 정착민들은 아일랜드의 수도승들이라 합니다.

History of Iceland by Hugleikur Dagsson

그 후로 수 백년이 지난 뒤 아이슬란드라는 이름은 스칸디나비아의 뱃사람인 플로키 빌게르다르손(Flóki Vilgerðarson)에 의해 붙여졌습니다. 혹독한 겨울 날씨 속에서 얼음이 떠 다니는 피오르드를 보고 붙인 이름이라 합니다.

하라프나-플로키(Hrafna-Flóki)라고 불렸던 그는 아이슬란드로 항해해 온 첫 노르드인 이었습니다. “정착민들의 책”에 그에 대한 이야기 역시 기록되어 있습니다.

잉골푸르 아르나손(Ingólfur Arnarson)은 아이슬란드의 첫 영구 정착민 역사를 쓴 사람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두 개의 조각기둥을 뱃전 너머로 던져버리고 기둥이 닿는 곳에 정착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기둥들이 제 때에 발견되어 현재 레이캬비크(Reykjavik)로 불리는 곳에 그의 가족들이 정착했습니다. 이 때가 기원 후 874년입니다.

노르웨이 부족장들은 그 뒤 수 십년동안 노르웨이의 가혹한 해롤드 왕을 피해 단체로 잉골푸르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60년 안에 아이슬란드에는 사람들이 제대로 자리잡게 되었죠.

아이슬란드가 크게 성장을 겪으려는 조짐이 보이고 정착민들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새로 운 지배 체계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습니다. 그리하여 각 부족장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국가적 의회라 불리는 알씽기(Althingi)를 만들었습니다.

후글레이쿠르 다그손(Hugleikur Dagsson)이 그린 위의 재미난 그림과 함께 이 역사적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세요.

연기 속의 고난

18세기경 라키(Laki) 화산의 분출과 함께 엄청난 재난이 아이슬란드에 닥쳐왔고 약 9000명 정도의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더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용암이 전국의 가축들 80% 가량을 몰살시켰던 점입니다. 이로 인해 기근이 닥쳐와 거의 4분의 1 가량의 아이슬란드 인구가 사망하였습니다.

개발국 중 가장 심각했던 이 굶주림의 시간을 “연기 속의 고난(Mist Hardships)”이라 부릅니다.

변화의 시대

이 시기 대부분의 정착민들은 북유럽 신들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영향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파시켰고 수 년간 이 두 개의 종교는 평화롭게 공존하였습니다.

Founder of Iceland, Jon Sigurdsson, portrait by Þórarinn B. Þorláksson

13세기에는 “스툴르룽의 시대(Age of the Sturlungs)”라 불리는 내전이 아이슬란드를 휩쓸었고 이로 인해 아이슬란드는 한 세기 후 덴마크로 넘어갈 때까지 노르웨이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3세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관습을 억압하여 루터교를 강요했고,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터교로 남아있습니다.

덴마크의 아이슬란드 식민지배는 600년 뒤 욘 시구르드손(Jón Sigurðsson)과 용감한 아이슬란드 지식인들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순식간에 끝이 났습니다. 자치적인 아이슬란드 정부를 수립하고 현대 아이슬란드의 기틀을 닦은 사람인 욘 시구르드손은 한번도 대통령 직에 오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욘 대통령’이라 불립니다.

오늘날의 아이슬란드

앞서 알아본 대로 아이슬란드는 1944년 6월 17일 국민 97%의 동의에 의해 덴마크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세계 2차대전 동안 발전하였으며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어업과 농업부문에서 높은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처음엔 영국군과 미국군이 1940년에서 41년 동안 아이슬란드에 상주하였고, 마샬 플랜 또한 전후에 아이슬란드 경제 성장을 도왔습니다. 

football on a frozen pond in Reykjavik by Ingólfur Shahin

한 해의 수확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조금 불안정하기는 했지만, 실업률은 낮았고 산업은 부흥했으며 국민들의 삶의 질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 독립당이 아이슬란드의 경제 구조를 전체적으로 바꾸려 시도하였습니다. 대부분의 큰 변화가 그렇듯이 약간의 적응기간이 필요했지만 약간의 침체기가 있은 후 경제는 다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매 년 4%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아이슬란드의 산업구조는 더 이상 어업에만 의지하지 않고 다양하게 발전하였습니다.

아이슬란드는 1994년에 유럽 경제 연합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새로운 수익 창출 방안으로 국제 금융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잘 알려졌듯이 금융분야는 2008년의 대규모 신용불량 사태로 인해 은행들이 하나씩 무너지며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아이슬란드에는 또한 친환경 에너지원을 이용하기 위해 수많은 지열발전소와 수력발전소가 있습니다. 자연 보호와 에너지산업 발전에 대한 대대적인 논쟁과 토론 끝에 이루어 진 성과물입니다.

수 천 년전 바이킹들에 의해 이루어진 첫 정착의 역사에서부터 오늘날의 자유로운 나라에 이르기 까지, 아이슬란드의 역사는 전설과 설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튼튼한 경제와 아름다운 자연의 속에서 아이슬란드는 21세기에도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글 : 잉골푸르 샤힌(Ingólfur Sha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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